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 지하철 참사 (문단 편집) == 여담 == * 희생자들의 합동영결식은 사고 131일만인 2003년 6월 29일 대구시민회관 광장에서 거행되었고, 사고 지점인 중앙로역 지상에서 노제를 열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3/06/29/2003062970260.html|#]] * 이 사고 이후 [[대구광역시]]에서는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20[age(2000-01-01)]년 현재는 [age(2003-02-18)]년이 되었다. 9년째인 [[2012년]]에는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삶을 기사화했다([[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0302181027334|"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반면 추모 사업은 국민성금으로 조성된 특별위로금 운영과 유족회 출연기금 등을 두고 유족들이 갈등하는 등 한동안 난항을 겪다가 2016년 [[http://www.218safety.com|'218안전문화재단']]이 세워졌다. * 사건 이후 전 국민이 발 벗고 나서서 참사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금을 수없이 보냈으며 인터넷에서는 전년도에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 마크를 이 사건에서도 추모의 의미로 많이 사용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노란 리본]]처럼 그 당시에도 추모의 의미로 많은 시민들이 '근조(謹弔)'라고 새겨진 검은 리본을 달았다. * 대구 지하철 사고 유족 중 한 명은 2017년 다음 [[스토리펀딩]] <재난참사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이후 책 <재난을 묻다>로 출판)에서 해당 사고에 대해 '인간 사회는 서로간 신뢰가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국민들을 속게 하는 행정 및 정치가 계속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뼈 아픈 교훈을 전했다. * 사건 당시 대구를 연고로 하고 있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 농구단은 19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홈 경기가 있었다. 사건 이후 대구광역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고 5일 동안 시민 애도 기간을 정한 상태였다. 이에 동양은 몰수패를 각오하고 경기를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경기를 진행했으며 대신 [[치어리더]] 등의 응원 없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74:82로 LG의 승리. 이리하여 동양은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잃어버린 15초 사건으로 인해 통합 우승은 놓치게 된다. * 이후 [[K리그]]의 [[안양 LG 치타스]] 서포터들이 [[대구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게시판에 '불전동차'라는 지역 비하 발언을 하면서 네티즌의 항의가 폭주해 안양 레드 치타스 홈페이지가 마비되자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와 대구·안양시청 홈페이지, 안양LG 축구 치타스홈페이지 등 인터넷 게시판까지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서포터즈 측이 사과문을 올렸다. * 사고 발생 3년 후인 2006년에는 [[반월당역]]에서 [[청라언덕역|서문시장역]]으로 운행 중이던 [[대구 도시철도 2호선|대구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화재 경보기가 오작동되는가 하면[[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POD&mid=tvh&oid=052&aid=0000120909|#]] [[반고개역]]을 출발한 전동차가 터널 안에서 멈춘 뒤 갑자기 전동차 내의 조명이 모두 꺼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고[[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15&oid=214&aid=0000026823|#]] [[동대구역]]을 폭파해 버리겠다는 신고가 접수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82&aid=0000085069|#]] [[수성구청역]] 지하 2층의 환기실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연기가 발생해 승객들이 대피하고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일이 빚어지는 등[[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110554|#]] 대구 지하철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대구 시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사고들이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 대구 이외의 지역에서도 2006년 상반기에 총 3건의 화재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이 중 [[부산 도시철도|부산 지하철]] [[경성대·부경대역]]과 [[수도권 전철 4호선|서울 지하철]] [[인덕원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하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POD&mid=tvh&oid=052&aid=0000117410|#]],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60401000008|#]] *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대구역(도시철도)|대구역]] 등 인근 역으로 걸어가서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거의 모두 부상 하나도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 역에 '통곡의 벽'이라는 벽 너머엔 아직 일부가 남아 있다.]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 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다. * 피의자 [[김대한(범죄자)|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대구광역시)|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상술한 대로 '''불과 5개월 전에''' [[광진구 어린이선교원 흉기난동 사건]]이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1심에서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으로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 이후 상고를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곤란과 [[뇌졸중]]으로 [[자업자득|급사]]했다. *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 등급제가 철폐된 [[2019년]] [[7월]] 기준으로 중증 지적장애에 해당함.]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중부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상북도|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존재의 부정|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한다. * 대구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에선 사고 10주년 즈음 3편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733&yy=2013|<상> 아물지 않는 유가족 고통]],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974&yy=2013|<중> 후유증 시달리는 부상자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8358&yy=2013|<하> 부상자 처우 및 향후 대책]] * 2013년 [[2월 15일]], [[김범일]] 前 [[대구광역시장]]은 참사 10주년을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http://news1.kr/articles/1012095|#]] * 참사 10주년이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218623|#]]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8433&yy=2013|#]] [[파일:external/www.idaegu.com/01010100101.20151228.000149308.02.jpg]] * 참사 12주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81733391&code=620100|추모벽이 중앙로 역 지하 2층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길이 27m, 폭 3m, 340m^^2^^ 넓이로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그리고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 측정기, 물품 보관함,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이 사고로 인해 [[PTSD]]라는 질병이 양지에서 공론화되었다. 이전에도 [[5.18 민주화운동]]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PTSD 환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당시 신경정신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고 [[의지드립]]이 난무하던 분위기상 피해자는 상처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PTSD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여 후대의 참사 처리에 있어 PTSD 치료는 외적 부상 치료 이후에 반드시 행해지는 치료로 자리 잡았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해선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유족들을 비밀리에 도왔음이 유족 중 한 명인 박성찬 씨에 의해 알려졌다. [[http://www.fnnews.com/news/201602191520534401|기사 1]],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1174.html?_fr=mt2|기사 2]]. * 이 사건 이후 강화된 지하철 역사내 인화물질 반입 통제가 시행됐다. 이 때문에 2018년 2월 3일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80203.010060734490001|이런 사건]]도 있었다. [[http://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41218374|TBC 뉴스 장면.]][* 만약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고 예정대로 2018년 2월 24일에 임기를 마쳤다면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직전 대형 방화 사건 [[징크스]]가 4회 연속으로 이어질 뻔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또한 대한민국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가 된 암울한 분위기에서 치러질 뻔했다. 훗날 [[이태원 압사 사고]] 직후에 열린 [[2022년 한국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르다.] * 불에 타 전소된 전동차 12량 중 9량은 고철로 판매하였으며 1량은 2007년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안전 교육용으로 조성되었고 나머지 2량은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현재까지 대구 안심 차량기지에 천막에 씌워진 채 방치되어 있다. 원래 1818호만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기증하고 나머지 11량은 파주에 고철 매각하려고 했으나 유족들의 반대로 1130호, 1730호는 사실상 안심 기지에 방치 중이다. * 매년 2월 18일 사고 발생 시간에 [[중앙로역(대구)|중앙로역]]으로 도착한 전동차는 추모의 의미로 5초간 경적을 울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Ek4dzhHxf6A|영상]] * 2022년 2월 19일 [[대구 FC]] 홈 개막전에서 팬들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추모하는 내용의 걸개를 내걸었다. [[https://www.sports-g.com/2022/02/19/%ec%b6%94%ec%96%b5%ea%b3%bc-%ec%b6%94%eb%aa%a8%eb%a1%9c-%ea%b8%b0%eb%85%90%ed%95%9c-%eb%8c%80%ea%b5%ac%ec%9d%98-%ec%b0%bd%eb%8b%a8-20%ec%a3%bc%eb%85%84-%ed%99%88-%ea%b0%9c%eb%a7%89%ec%a0%84#_enliple|#]] * [[북한]]은 2003년 2월 20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명의로 조의전통문을 발송했다. >지난 18일 대구시 지하철도에서 뜻밖의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난데 대해 동족으로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우리는 피해자와 유가족들, 대구시민들이 하루빨리 슬픔과 재난을 가시고 정상적인 생활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조선중앙텔레비죤과 로동신문은 [[KBS]]를 인용하여 1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논평 없이 사실만 보도하였다. 이를 인연 삼은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회는 1년 후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모금 운동을 벌여 성금 500만원을 기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